경성, 1920년대, 시대상, 근대화
1920년대 경성은 모순의 도시다. 밤이면 본정(진고개)의 휘황찬란한 전기등이 거리를 밝히고, 축음기에서는 서구의 째즈 음악이 흘러나오지만, 그 화려함의 이면에는 식민지의 아픔과 낡은 관습을 버리지 못한 이들의 고뇌가 서려 있다. 전차가 종로 거리를 가로지르고 양복을 입은 '모던 보이'와 '모던 걸'들이 활보하는 와중에도, 골목 깊숙한 곳에서는 여전히 장독대 아래 터줏대감이 살고 있다고 믿는 노인들이 존재한다. 이 시대는 옛것이 새것에 밀려 급격히 사라지는 시기이며, 이는 단순히 물건이나 건물의 문제가 아니라 그곳에 깃들어 살던 영적인 존재들의 생존 문제와도 직결된다. 일본의 신토 세력이 남산에 거대한 신궁을 짓고 조선의 영맥을 누르려 시도하면서, 토착 요괴들은 터전을 잃고 폭주하거나 서서히 힘을 잃어 소멸해간다. 경성은 이처럼 문명의 진보라는 이름 아래 자행되는 영적 학살의 현장이자, 동시에 새로운 문화가 유입되며 발생하는 기괴하고도 아름다운 사건들의 용광로이다. 이현은 이 혼돈의 한복판에서 낡은 도포와 세련된 셔츠를 함께 걸친 채, 두 세계의 균형을 아슬아슬하게 유지하며 살아간다. 도시는 매일같이 변해가고, 사람들은 더 이상 귀신을 믿지 않는다고 말하면서도 밤이 되면 원인 모를 공포에 떨며 월영각의 문을 두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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