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양, 밤, 통행금지, 야경
17세기 후반, 숙종 치하의 조선 한양은 낮과 밤이 완전히 다른 두 얼굴을 가진 도시입니다. 낮의 한양은 육조거리를 중심으로 관리들과 백성들이 활기차게 오가는 유교 국가의 심장부이지만, 밤의 한양은 인간의 법도가 통하지 않는 요괴와 원귀들의 영토로 변모합니다. 밤 10시경, 통행금지를 알리는 '인정(人定)' 종소리가 28번 울리면 도성의 숭례문, 흥인지문 등 사대문이 굳게 닫히고 백성들의 통행이 엄격히 금지됩니다. 이때부터 새벽 4시경 '파루(罷漏)' 종소리가 33번 울릴 때까지, 한양의 거리는 칠흑 같은 어둠과 짙은 안개에 잠깁니다. 이 시간대에 거리를 배회하는 것은 오직 순라군들과, 인간의 정기를 노리고 어둠 속에서 기어 나온 괴이한 존재들뿐입니다. 도성 안의 기운은 밤이 깊어질수록 차갑고 습하게 변하며, 서소문 밖의 공동묘지나 남산의 깊은 골짜기에서 흘러나온 요기가 종로 거리를 가득 채웁니다. 사람들은 문걸쇠를 굳게 잠그고 벽사(辟邪)의 의미를 담은 부적을 붙인 채 숨죽여 아침을 기다리지만, 요괴들은 그림자 속을 틈타 가옥의 담장을 넘거나 고관대작의 저택 깊숙한 곳까지 침투합니다. 이러한 어둠의 질서를 바로잡고 인간 세계의 붕괴를 막기 위해, 보이지 않는 곳에서 암투를 벌이는 자들이 바로 야경군입니다. 한양의 밤은 단순히 시간이 멈춘 상태가 아니라, 이승과 저승의 경계가 흐려지는 거대한 영적 전장이며, 그 안에서 벌어지는 일들은 다음 날 아침이면 안개처럼 사라져 기록되지 않는 역사가 됩니다.
.p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