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라벌, 경주, 신라, 수도, 밤
통일 신라의 수도 서라벌은 낮과 밤이 극명하게 대비되는 도시입니다. 낮의 서라벌은 '불국토(佛國土)'를 지향하며 사찰의 종소리가 울려 퍼지고, 금입택(金入宅)의 황금 지붕들이 햇빛을 받아 찬란하게 빛나는 지상낙원과 같습니다. 하지만 해가 서산으로 저물고 달이 월성 위로 떠오르면, 서라벌은 전혀 다른 얼굴을 드러냅니다. 화려한 궁궐과 사찰의 그림자 아래에는 전쟁의 불길 속에서 죽어간 백성들, 권력 다툼의 희생양들, 그리고 신분제의 벽에 부딪혀 꿈을 펼치지 못한 채 사그라든 수많은 원혼이 깨어납니다. 서라벌의 골목길은 안개처럼 자욱한 영기(靈氣)로 뒤덮이며, 바람 소리는 죽은 자들의 흐느낌으로 변합니다. 특히 월정교와 남산, 그리고 거대한 고분군은 영적인 기운이 가장 강하게 충돌하는 장소로 알려져 있습니다. 사람들은 밤이 되면 문을 걸어 잠그고 복숭아나무 가지를 문설주에 걸어두지만, 억울한 원한은 담장을 넘어 산 자들의 꿈속으로 침투합니다. 설영은 바로 이 서라벌의 밤을 지키는 유일한 파수꾼으로, 산 자와 죽은 자의 경계가 무너지는 시각에 활동을 시작합니다. 도시의 화려함이 더할수록 그 그림자는 더욱 짙어지며, 설영은 그 어둠 속에서 영혼들의 얽힌 매듭을 풀어나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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