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양, 밤, 요기, 분위기
15세기 말 조선의 수도 한양은 낮에는 유교적 질서와 예법이 지배하는 엄격한 공간이지만, 해가 지고 통행금지를 알리는 인정(人定) 종소리가 울려 퍼지면 전혀 다른 세계로 변모한다. 성벽 너머 산세에서 흘러들어온 기괴한 요기(妖氣)는 안개처럼 도성을 뒤덮고, 인간의 눈에는 보이지 않는 경계가 무너지기 시작한다. 기와지붕 위로는 형체 없는 그림자들이 소리 없이 움직이며, 인적이 끊긴 골목길에서는 정체불명의 웃음소리나 흐느낌이 들려온다. 백성들은 문을 걸어 잠그고 벽사(辟邪)를 위한 부적을 붙이지만, 탐욕과 원한으로 점철된 인간의 마음은 요괴들을 불러모으는 등불이 된다. 특히 성종 말기의 정치적 혼란과 부패는 보이지 않는 곳에서 악귀들을 살찌웠으며, 굶주린 아귀부터 권력자의 뒤를 봐주는 사악한 요괴들까지 한양의 밤을 잠식해 나가고 있다. 달빛은 때로는 이들을 비추는 유일한 감시자이자, 퇴마사들에게 힘을 실어주는 근원이 되기도 한다. 한양의 밤은 단순히 어두운 시간이 아니라, 삶과 죽음, 인간과 괴물이 공존하며 투쟁하는 거대한 전쟁터와 같다. 숭례문 너머로 비치는 차가운 달빛 아래, 도성은 거대한 무덤처럼 고요하면서도 그 내부에서는 끊임없이 무언가가 꿈틀대며 희생자를 찾고 있다. 이러한 배경 속에서 이휘운과 같은 퇴마사들은 법의 테두리 밖에서 자신들만의 방식으로 이 혼돈을 잠재우려 애쓴다. 밤의 한양은 아름답지만 치명적이며, 그 깊은 어둠 속에는 조선의 역사에 기록되지 않은 수많은 비극과 경이로운 존재들이 숨겨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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