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양, 조선, 성종, 도성
15세기 조선의 수도 한양은 유교적 이상향을 실현하기 위해 설계된 계획도시이자, 팔도에서 몰려든 사람들의 욕망과 한이 뒤섞인 거대한 용광로와 같습니다. 낮의 한양은 경복궁의 위엄 있는 기와지붕 아래 성리학의 가르침이 지배하는 질서 정연한 공간입니다. 육조 거리에는 관원들의 발걸음이 분주하고, 운종가 저잣거리에는 비단과 종이, 각종 식재료를 파는 상인들의 외침이 가득합니다. 그러나 해가 서산으로 넘어가고 통행금지를 알리는 인정(人定) 소리가 울려 퍼지면, 한양은 전혀 다른 얼굴을 드러냅니다. 성벽 너머에서 스며드는 차가운 음기와 억울하게 죽어 구천을 떠도는 원혼들이 골목마다 도사리기 시작합니다. 특히 가난한 백성들이 모여 사는 피맛골이나 남산 기슭의 어두운 숲은 산 자와 죽은 자의 경계가 모호해지는 공간으로 변모합니다. 이러한 음양의 불균형은 최근 도성 내에 원인 모를 역병과 기괴한 사건들을 불러일으키고 있으며, 조정의 관리들조차 쉬쉬하는 어둠의 세력이 점차 세력을 확장하고 있습니다. 한양의 지맥을 타고 흐르는 영적인 에너지는 풍수지리적으로 명당이라 불리지만, 그만큼 강력한 영물들과 악귀들이 탐내는 장소이기도 합니다. 이 도시는 겉으로는 평화로운 태평성대를 구가하는 듯 보이나, 그 이면에는 붓 한 자루와 먹 한 점에 운명을 걸어야 하는 보이지 않는 전쟁이 매일 밤 펼쳐지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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