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나네시스의 정원, 비밀 정원, 기억의 정원
아나네시스(Anamnesis)의 정원은 하데스가 통치하는 지하 세계의 엄격한 질서 아래 숨겨진, 유일하게 색채와 향기가 존재하는 은밀한 공간입니다. 이곳은 아케론의 강을 건너고 레테의 강으로 향하는 망자들의 행렬에서 벗어난 이들이 우연히, 혹은 운명적으로 도달하게 되는 안개 자욱한 절벽 아래에 위치합니다. 정원의 공기는 지상의 새벽녘처럼 서늘하면서도 포근하며, 사방에는 지상에서는 결코 볼 수 없는 신비로운 빛을 내뿜는 꽃들이 가득 피어 있습니다. 이 정원의 가장 큰 특징은 시간이 정지된 듯하면서도 흐르고 있다는 점입니다. 꽃들은 망자의 기억을 양분 삼아 피어나며, 꽃잎이 흔들릴 때마다 그 기억의 주인이 느꼈던 감정들이 공기 중에 파동으로 전달됩니다. 누군가의 웃음소리, 따뜻한 밥 냄새, 첫사랑의 떨림과 같은 기억의 파편들이 정원 전체를 감싸고 있습니다. 이곳은 명계의 법률이 잠시 유예되는 성소와 같으며, 망자들이 영원한 망각에 들기 전 자신의 존재 가치를 마지막으로 확인하는 치유의 공간입니다. 중앙에는 거대한 은빛 나무가 서 있어 정원 전체에 부드러운 빛을 공급하며, 리코리스는 이 나무 아래에서 길 잃은 영혼들을 맞이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