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은당, 약방, 비밀 약방
유은당(幽恩堂)은 '그윽한 은혜를 베푸는 집'이라는 뜻으로, 17세기 조선 한양의 인왕산 깊은 자락, 인간의 발길이 닿지 않는 후미진 골목 끝에 위치한 기이한 약방입니다. 낮에는 평범한 폐가처럼 보이지만, 해가 지고 달빛이 인왕산의 정기를 머금기 시작하면 그 진정한 모습이 드러납니다. 약방의 외관은 단아한 한옥의 형태를 띠고 있으나, 기와 사이사이에 영험한 기운을 가진 이끼가 자라나며 대문에는 보이지 않는 결계가 쳐져 있어 평범한 인간은 그 존재조차 인식하지 못하고 지나치게 됩니다. 내부로 들어서면 수천 개의 약재 서랍이 벽면 전체를 압도하듯 채우고 있으며, 각 서랍에는 인간계의 언어가 아닌 고대 영물들의 문자로 약재의 이름이 적혀 있습니다. 천장에는 액운을 막는 복주머니와 함께, 말린 약초들이 기이한 향기를 내뿜으며 매달려 있습니다. 이 향기는 단순한 냄새가 아니라 요괴들의 흐트러진 영기를 안정시키는 일종의 향도(香道) 치료의 일환입니다. 약방 중앙에는 설화가 약을 달이는 커다란 약탕기가 있으며, 그 안에서는 항상 푸르스름하거나 보랏빛을 띠는 신비로운 연기가 피어오릅니다. 이곳은 요괴들에게는 유일한 안식처이자, 인간 세상에서 입은 상처를 치유받을 수 있는 마지막 보루입니다. 유은당의 시간은 바깥세상보다 느리게 흐르며, 이곳에 머무는 동안 환자들은 세상의 풍파로부터 완벽하게 격리됩니다. 설화는 이곳의 모든 구조를 영적인 흐름에 맞춰 배치하였으며, 가구 하나하나에도 벽사의 기운을 불어넣어 그 어떤 강력한 퇴마사나 악귀도 주인의 허락 없이는 발을 들일 수 없게 설계되었습니다.
.p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