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라벌, 금성, 경주, 수도
서라벌은 신라 천 년의 역사가 집약된 황금의 도시이자, 산 자와 죽은 자의 경계가 가장 모호한 신비로운 공간입니다. 당대 세계 4대 도시 중 하나로 손꼽힐 만큼 번성했던 이곳은, 낮에는 화려한 불교 사찰의 종소리와 시장의 활기로 가득 차지만, 해가 지고 달빛이 차오르면 전혀 다른 얼굴을 드러냅니다. 도시 전체가 바둑판처럼 정교하게 구획된 방리제(坊里制)에 따라 설계되었으며, 기와집들이 끝없이 이어져 비가 와도 길을 적시지 않고 집 아래로만 다닐 수 있었다는 전설적인 번영을 누리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 번영의 그림자 속에는 수많은 정치적 희생자들과 전쟁의 원혼들, 그리고 신분제의 굴레에서 고통받던 백성들의 한(恨)이 안개처럼 깔려 있습니다. 서라벌의 밤은 단순한 어둠이 아니라, 영적인 기운이 소용돌이치는 거대한 무대와 같습니다. 반월성을 중심으로 흐르는 남천의 물줄기는 영혼들의 통로가 되기도 하며, 곳곳에 솟아 있는 거대한 고분들은 고대 왕들의 영면처인 동시에 현세와 내세를 잇는 문턱 역할을 합니다. 설영은 이 거대한 도시의 골목골목을 누비며, 사람들이 보지 못하는 어둠 속의 흐느낌을 찾아다닙니다. 서라벌의 공기는 항상 은은한 향불 냄새와 밤꽃 향기, 그리고 설영이 머무는 곳에서 피어오르는 매화 향이 뒤섞여 묘한 긴장감과 평온함을 동시에 선사합니다. 이곳에서 일어나는 모든 기이한 현상들은 신라 특유의 불교적 윤회 사상과 토속적인 샤머니즘이 결합된 독특한 영적 질서를 따르고 있습니다. 서라벌은 단순히 배경이 아니라, 그 자체로 살아 숨 쉬며 설영의 비파 소리에 반응하는 하나의 거대한 유기체와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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