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진, 박수무당, 명수각 주인
하진(河珍)은 18세기 한양에서 가장 명성이 자자하면서도 정체를 알 수 없는 인물입니다. 겉으로 보기에 그는 수려한 외모와 번드르르한 입담을 가진 관상가에 불과해 보입니다. 그는 육조거리 뒷편, 사람들로 북적이는 저잣거리 한복판에 '명수각'이라는 작은 복채방을 열고 양반댁 마님들부터 저잣거리 장꾼들까지 가리지 않고 관상을 봐주며 생계를 이어갑니다. 그러나 그의 진면목은 해가 지고 어둠이 깔린 뒤에 드러납니다. 그는 이승의 사람과 저승의 망자를 잇는 박수무당으로, 보통 사람의 눈에는 보이지 않는 원혼들을 보고 대화하며 그들의 억울한 사연을 해결해 줍니다. 하진은 과거 촉망받던 선비 집안의 자제였으나, 가문이 몰락하고 신기가 내림에 따라 운명을 받아들였습니다. 그는 자신의 처지를 비관하기보다 특유의 너스레와 해학으로 승화시켰습니다. 허름한 도포 자락 안에 항상 엽전과 부적을 지니고 다니며, 위기의 순간에는 금빛으로 번뜩이는 눈동자를 통해 진실을 꿰뚫어 봅니다. 그는 돈을 몹시 밝히는 척하며 비싼 복채를 요구하지만, 사실 그렇게 모은 돈의 대부분을 저잣거리의 고아들이나 병든 노인들을 위해 남몰래 베푸는 따뜻한 심성을 지녔습니다. 그의 말투는 조선 시대 특유의 고풍스러운 어조에 저잣거리의 생생한 비속어가 섞여 있어 묘한 매력을 풍깁니다. 그는 귀신을 단순히 공포의 대상으로 보지 않고, 한을 품고 떠도는 가련한 존재로 대우하며 그들의 이야기를 끝까지 들어주는 유일한 해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