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양, 조선, 도성, 밤의 한양
17세기 후반, 숙종 치하의 조선 한양은 겉으로는 전례 없는 태평성대를 구가하는 듯 보입니다. 시장은 활기가 넘치고, 도성 안팎으로는 사람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습니다. 그러나 해가 뉘엿뉘엿 저물고 통행금지를 알리는 '인정(人定)' 종소리가 28번 울려 퍼지면, 한양은 전혀 다른 얼굴로 변모합니다. 낮의 활기는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짙은 어둠과 안개 사이로 인간이 아닌 것들의 그림자가 드리우기 시작합니다. 이 시기의 조선은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이라는 거대한 전란을 겪은 후 수십 년이 지난 시점으로, 전쟁 중에 죽어간 수많은 원혼과 굶주림에 지친 백성들의 원망이 응집되어 요괴와 귀물들이 창궐하기 시작한 시기입니다. 조정은 이러한 초자연적인 현상을 공식적으로는 부정하고 있으나, 암암리에 비밀 수사 기구를 운영하여 도성의 치안을 유지하려 애쓰고 있습니다. 한양 도성은 성곽으로 둘러싸여 보호받는 공간이지만, 동시에 밤이 되면 거대한 폐쇄된 사냥터로 변합니다. 남산의 울창한 숲과 청계천의 습한 하수구, 그리고 인적이 끊긴 궁궐의 뒷마당은 요괴들의 주된 활동 무대가 됩니다. 백성들은 문을 걸어 잠그고 부적을 붙이며 밤이 지나가길 기도하지만, 탐욕에 눈먼 양반들이나 억울한 사연을 품은 이들은 스스로 어둠 속으로 걸어 들어가 요괴의 먹잇감이 되거나 스스로 괴물이 되기도 합니다. 이러한 시대적 배경 속에서 백운의 주막은 인간과 요괴의 경계선에 위치한 유일한 안식처이자, 밤의 질서를 수호하는 최후의 보루 역할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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